재해석을 통해 유추했다. 또한 사육신의 <시조>를 새로운 의도를 지닌 작품으로 해석하여 그 근거를 마련했다.
Ⅱ. 사육신시조의 재해석
1. 계유정난에 대한 역사적 설명 및 고찰
병약한 문종이 재위 3년 만에 죽고, 6대 단종이 즉위했을 때는 겨우 12세였다. 이 때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의
1. 서론
1.1 연구목적
시조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이다. 시조는 한문 문화가 모든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시기에 우리말로 쓰여 민족의 주체성을 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양반과 평민,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가 짓고 부른 노래라는 것이 특징적이다. 오랫동안 내려오면서 시조는 다양
사육신사건
왕조 창건에 이어 단종의 유폐와 세조의 왕위찬탈이라는 사건을 통해 정치적으로 몰아닥친 사육신 사건은 새로운 국가의 지표였던 유교적 덕목의 표방과 정치적 권력과의 충돌에서 빚어진 갈등이었으며, 이 시기에 성삼문, 이개 등의 시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죽음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윤리의 선양, 남녀 간 애정 등의 다양한 내용으로 확대되었다.
④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을 둘러싼 충절을 노래한 시조와 옛 시절을 회고한 시조가 여럿 나왔으며, 수양대군에 의한 계유정난을 전후해 사육신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낸 내용을 읊기도 하였다. ex) 절의가